3. 구 노량진수산시장 나세균 열사를 추모하며



“세균이가 강직해. 책임감도 있고, 소탈하고, 정도 많아. 용역 깡패 온다 그래서 기다릴 적에나, 농성장에서 밤새울 적에나 늘 노래 부르고 춤 추고 그랬어. 할머니들 웃겨 준다고. 귀염둥이야.” (여주아구 상인 한상희)
“내 큰아들이 금년 52세야. 세균이랑 몇 살 차이도 안 나. 자식이지. 세균이도 우리더러 ‘엄마, 엄마’ 했어. 자식 같은 막내였어. 구만리 같은 청춘인데 벌써 갔어. 칠십 먹고 팔십 먹은 우리도 안 죽고 살아있는데. 엄마들 놔두고 어디 가냐, 세균아.” (우진상회 상인 박점엽)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농성장 지키러 나갔어요. 우리 집 옥상 파라솔은 날아가도 농성장 천막은 날아가면 안 된다면서 만날 시청 갔다가, 농성장 갔다가 했어요.” (아내 송현미)
“‘형부, 왜 이렇게 죽기 살기로 해? 거긴 형부 아니면 사람이 없어?’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내가 빠지면 안 돼. 수협 애들 오면 할머니들 다쳐. 젊은 사람이 가서 지켜야 돼’라 하더라고요.” (처제 임금희)

노량진수산시장의 잘못된 현대화 사업에 맞서 투쟁하던 여천상회 상인 나세균 열사가 2021년 11월 5일, 55세 일기로 숨을 거뒀습니다. 투쟁 중에 술을 자주 드셨는데, 그로 인해 몸이 많이 상하신 상태였습니다.


옥선은 11월 6일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서울시와 수협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8일에는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9일 열린 빈민사회장 영결식에서는 장례위원으로 참여하며 나세균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평소에 말씀이 많이 없으신 상인분들이 나세균 열사를 추모하며 목이 쉬도록 곡을 하시는 걸 보고 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본 폭력에 더 단단히 맞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세기 역사를 자랑하던 아시아 최대 수산물도매시장, 구 노량진수산시장 자리에는 축구장이 지어져 있습니다. 그 옆엔 구 시장 상인은 들어갈 수 없는 신 시장이 있습니다. 축구장이 된 시장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상인들은 언제쯤 다시 장사할 수 있을까요. 기억하고 기록하고 투쟁하는 일 제일 앞에, 늘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있겠습니다.


하민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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