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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낙원구 행복동들 “여기 사람이 있다”

최종 수정일: 2020년 1월 7일


-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 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1978년 출판된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지섭이 철거반에게 한 말이다. 시대의 작은 자들이 수백 년의 핍박 속에서 자리 잡은 보금자리가 철거되는 이 동네의 이름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다. 20일 안에 자진 철거하고 떠나라는 철거 계고장이 붙었고, 계고 기간이 지났다고 식사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철거반들이 쇠망치를 들고 담을 부수던 동네였다. 낙원도 아니고 행복도 없을 것 같은 가난한 철거촌의 이름이 낙원구 행복동이다. 이 이름은 낙원같이 화려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삶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가난한 이들의 지옥 같은 현실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누군가의 낙원을 위해 파괴하려고 하는 이 동네가,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작은 행복이 있는 동네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키 작은 아버지는 이 죽은 땅을 떠나 쇠공을 타고 달나라로 가려 벽돌공장 굴뚝에 올랐고(결국, 죽었다), 아들 영호는 그 집을 떠날 수 없다고 버티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가구가 한 채씩 집을 갖고도 남는다는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살만한 ‘집’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 된 지 오래다. 집을 짐으로 둔갑시킨 역사가, 한국 사회 도시 개발의 역사였다. 작년 발표된 개인 주택 보유 현황에 따르면,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 수는 4,599채로 1인당 560채에 달한다. 지난 50년간 쌀값은 50배, 휘발윳값은 77배 올랐는데, 땅값은 무려 3,000배나 올랐다(2015년 한국은행 통계). 이게 가능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다. 부동산과 개발의 욕망은 집과 땅의 독점이 가능한 시대를 쌓아 올렸다.

(사진제공 : 최인기)


‘난쏘공’의 시대로부터 30년이 흐른 2009년 1월, 21세기 낙원구 행복동이 된 용산 참사 현장을 조문한 조세희 작가는 한탄했다. “'난쏘공'은 벼랑 끝에 세워 놓은 '주의' 푯말이었다.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뜻이었는데…, 21세기의 어느 날에 더 끔찍한 일이 생겨버렸다.” ‘용산 참사’는 한계선을 표시한 기존의 ‘주의’ 푯말을 부수고, 위험의 한계를 넘어선 절망의 자리에 또 하나의 경계 푯말을 세웠다.


그렇게 난쏘공 시대로부터 40년, 용산 참사로부터도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주의’와 ‘절망’의 푯말은 포크레인에 눌리고 있고, 21세기의 낙원구 행복동들은 지금도 달나라로 향하는 저마다의 굴뚝에 오르거나, 떠날 수 없다고 버티며 짓밟히고 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유서를 남긴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은 꽁꽁 언 이 죽은 땅을 떠나 자신의 달나라로 향했다. 청계천 을지로, 마포구 대흥동, 성북구 장위동, 광진구 자양동, 개발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최소한의 권리라도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저마다의 굴뚝을 쌓으며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있다.


그런데도 용산 참사 이후 10년 동안 절망의 푯말만 세우지는 않았다. 뉴타운 개발의 환상과 욕망의 정점에서 발생한 용산참사는 ‘더는, 이런 살인적인 개발, 학살은 안 된다’는 푯말을 세웠다. 홍대 두리반, 명동 마리,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 등에서 고립된 철거민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새로운 운동의 푯말이 서기도 했다. 그리고 그 철거민 투쟁에 대한 연대는 개발 구역에 속한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지지의 연대를 넘어서야 하고, 넘어서고 있다. 개발이 개발 구역 내 철거민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자신들에게 미치는 권리의 박탈임을 인지하고 이야기하고 요구하는 데서, 우리는 연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도 각자의 하늘 끝 망루와 굴뚝에 올라 외치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에 대한 연대는, 부수고 짓고, 부수고 짓기를 반복한 지난 40여 년의 도시 개발의 역사에서, 우리의 주거권이, 우리의 공간이 어떻게 약탈당해 왔는지를 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우리의 푯말을 탄탄하게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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