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석

2호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지금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떠올려 봅시다. 당신은 지금 노량진역에 있습니다. 2번 출구를 향합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옵니다. 계단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내려왔더니 웬 포장마차들이 쫙 널려 있습니다. 가까이 가 봅니다. 생선을 파네요. 싱싱한 모둠회도 있습니다. 겨울을 더 포근하게 해주는 군고구마, 어묵, 떡볶이, 순대도 있네요. 수산물과 간식, 후식까지 다 파는 이곳은 노량진 수산시장입니다.


아시다시피 시장은 2번 출구 앞에 있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아는 그곳, 상상만 해도 활기와 물기와 주황색 조명들과 흥정하는 목소리들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곳에 있었는데요, 옛 시장 상인들은 작년 9월, 수협의 기습 침탈로 완전히 쫓겨났습니다. 50년간 수백 명의 상인이 장사하며 상권을 형성하고, 유서 깊은 역사와 관광 명소를 만들어낸 시장은 폐쇄됐습니다.


가게는 철거돼도 삶은 철거될 수 없습니다. 상인들은 2번 출구 근처 육교 위에 농성장을 차리고 출구 앞에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작년 9월부터 상인들과 2번 출구 앞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수많은 사람이 지나갑니다. 힐끗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익숙하게 자기 갈 길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멘 한 마디, 투쟁 구호 한 마디를 괜히 더 크게 외쳐 보기도 합니다.


이제 상인들을 옛 시장에서는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장사를 이어가고 있고 여전히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노량진역 2번 출구로 앞으로 오세요. 모둠회, 굴, 어묵, 떡볶이, 순대 다 먹어 봤는데 모두 맛있습니다.


<옥선 301> 2호 (2019년 겨울호)에서는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쫓겨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전과 같이 삶을 이어가며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님께서 옥중서신을 전해 주셨습니다. 김 사장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연결돼 있고 연대의 손을 잡고 매일 함께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의선 공유지에서 활동하시는 김상철님께서 공유지 소식을 기고해 주셨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산책길처럼만 보이는 공유지에는 아현포차 이모들, 도시 난민 희성 씨 등 여러 모양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공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공유지에도 강제 철거의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현재 상황은 어떤지 김상철님이 자세히 전해 주셨습니다.


자본과 공권력은 자꾸만 우리의 존재를 지웁니다. 우리를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우리를 비존재로 여기며 너무 쉽게 내쫓습니다. 우리가 한 공간에 긴 시간 머물며 살아오고 쌓은 것들을 너무 하루아침에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똑바로 봅니다. 연대의 손길과 발걸음으로 뚜렷하게 봅니다. 서로를 정확하게 호명하며 선명하게 봅니다. 여기, 사람이 산다는 것을요.


우리가 보이지 않아도 믿는 것은 쫓겨남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뿐입니다.


옥바라지선교센터 홍보와기획위원회

구석, 김유일, 김진수,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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