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옥선의 식탁을 준비한 '후원의 밤'



저는 먹고 마시는 일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아무거나 먹고 또 아무거나 마시는 일만큼 슬픈 일이 없죠. 사람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고, 매 끼니를 챙기는 마음에 있다고 믿어요. 지극히 일상적인 일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삶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쓸데없이 진지하다 보니 어느새 쩝쩝박사 타이틀만 남았네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옥선 후원의 밤의 먹거리와 마실 거리를 담당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상근 활동가로 옥선 활동을 할 때에도 연중 행사 중 가장 재미난 일이 바로 옥선 후원의 밤이었어요. 물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상당한 품이 드는 행사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에 우리 운동에 갖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함께해 주신 분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 뭔가 가슴 뭉클해지는 것이 있었거든요. 여기서 좋은 술과 좋은 먹을거리가 더해지니 더할 나위가 없죠.
홍대 공중캠프에서 있었던 후원의 밤을 떠올려 봅니다. 지금은 시카고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오세요 목사가 만든 비어브랏이 메뉴에 올랐고, 수십 개의 다양한 맥주들로 냉장고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처음 비어브랏을 먹었을 때의 감격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우리가 이 정도 수준의 음식을 할 수 있다니! 운동판 어딜 돌아다녀도 후원의 밤에서 이 정도의 음식이 나오는 곳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모두를 환대하는, 배제가 없는 식탁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논알콜을 준비하지 못했고 비건 음식을 따로 낼 생각도 없었거든요.
이런 점에서 옥선은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엔 비건 음식인 팔라펠을 만들었어요. 병아리콩과 향신료 등이 들어간 반죽을 동그랗게 빚고 튀겨내고요, 잘라낸 양상추 위에 튀겨낸 팔라펠을 올려주고, 또 그 위에 직접 만든 비건 렌치소스를 뿌려줍니다. 다행히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팔라펠이 되었습니다. 물론 비건을 실천하는 분들이 보았을 때 옥선 후원의 밤이 여전히 부족한 지점들이 있겠지만, 이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식탁,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식탁을 만들고자 하는 진심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후원의 밤의 먹거리와 마실 거리도 여러 손길들이 모여 준비되었어요. 더 좋은 후원의 밤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댄 후원의밤 TF팀과 사무국장님 자택에 모여 함께 팔라펠을 반죽해 준 은평구 옥선 활동가들의 고생이 있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오비베어의 맥주가 후원의 밤을 빛나게 해주었고요, 오비베어의 역사와 함께하는 잔슨빌 소시지를 궁중족발에서 빌려온 족발 들통에 담아 비어브랏을 만들었습니다. 당일엔 현직 바텐더로 일하시는 뽀로로 님께서 칵테일과 논알콜 칵테일을 만들어 주셨고요, 노동력을 갈아 넣느라 공연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고생해 준 옥선의 운영위원과 분과위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마음으로 옥선의 운동을 지지해 주시는 손님들을 맞이했어요. 여러 손길이 모여 준비된 후원의 밤이었기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방역 조치 때문에 여러 제한된 조건들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들 속에서 피어나는 반가움은 코로나가 주는 답답함마저 녹여냈습니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벌써 올해의 후원의 밤이 어떤 모습일지 기다려집니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줄 얼굴들과 올 한해 새롭게 만나게 될 얼굴들을 기대하게 되네요. 올해도 맛난 먹거리와 마실 거리로 옥선의 식탁이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부디 마스크 벗고 만납시다!
윤성중 교회와신학위원회 분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