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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구석

벽을 넘어서는 연대의 힘



김유일 홍보와기획위원회 분과위원

재작년 겨울, 학내 시위 도중 들어온 용역과 한바탕 일을 끝낸 뒤, 쉬려고 잠시 바닥에 누웠을 때 느꼈던 것이 있다. 어떤 짓을 해도 불의한 현실이 바뀌지 않아서 오는 절망감이다. 시위가 끝난 후에도 그 절망은 나를 도망칠 수 없게 잡아당겼다. 마치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는데,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내뱉는 것뿐이었다.


사랑을 포기한, 억압의 주체가 된 교회. 내 분노는 교회를 향했다. 학내 투쟁이 신학교에서 벌어진 것도 한몫했지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교회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회가 혐오와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벽은 높아져 갔고 내가 목회자를 꿈꿨었기 때문인지 분노는 갈수록 짙어졌고 자기 혐오적으로 변해갔다. 문제는 내 분노가 결론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터져 나오는 분노를 배설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지, 이게 끝인 건지 매번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무렵 비슷한 시기에 궁중족발 강제 집행이 진행됐다. '용역'이라는 주제에 민감하던 터라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거대한 벽' 앞에 주저앉아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일까, 궁중족발 현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때 처음으로 분노를 뱉어내는 것이 아닌, 곁에서 함께 울고, 위로를 건네며, 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먼저 앞서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알게 됐는데 그게 바로 옥바라지선교센터였다.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 편에 서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삶이며 옥선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나는 옥선을 보며 연대를 알아갔고 조금씩 절망과 무기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분노를 분노로만 끝내지 않는 법도 배워갔다. 그때부터 나는 옥선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옥선 홍보와기획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현장에서 함께하고, 촬영한 사진과 영상으로 현장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전부를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벽을 넘어가는 작은 연대의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거대한 벽이, 사회구조의 억압이, 국가와 법의 폭력이, 혐오와 차별이 '거대한 벽'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겠지만. 우리의 연대가 그 벽을 허무는 승리의 시작이 되길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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