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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구석

몫이 없는 이들을 위한 도시 커먼즈, 경의선 공유지


김상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X26번째자치구운동 정책팀장

1.

더위가 막 기승을 부리던 작년 7월 15일 아침에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공덕역 인근에 있는 경의선 공유지에 마포구청 공무원들이 와서 펜스를 설치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는 공유지와 함께하는 26번째 자치구 주민들이 실랑이 중이었습니다. 마포구청은 광장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구 한두 개 정도를 남기고 2m 높이의 펜스를 설치하겠다 했습니다. 당연히 이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고 다양한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곳인데, 이런 곳을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급하게 펜스를 칠 만큼 다른 사용 목적이 발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돌아간 마포구청 공무원들은 그 다음날인 16일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인 17일에도 펜스를 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특히 16일에는 일선 마포구 공무원들까지 동원되어 왔고 펜스 구조물을 실은 차량까지 온 상태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포구청 공무원에게 물은 것은 2가지였습니다. 펜스를 치는 것은 공사행위인데 통상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공사의 목적이나 기간을 명시한 공사표지판을 설치하여야 함에도, '왜 펜스를 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마포구청 공무원은 '말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였으며 공사 고시문에 대해서도 '그럴 의무가 없다'고 답을 했습니다. 이는 현행 행정절차를 위반한 것입니다.


▲ 사진 김상철


다음으로 경의선 공유지는 철도용지로, 국유지입니다. 이에 따라 해당 토지의 소유권은 중앙정부, 즉 국토교통부에 있으며 관리권은 철도시설공단에 있습니다. 즉 마포구청이 이 부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리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위임 등의 절차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한 마포구청 공무원의 답은 '나중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확인을 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당신이 책임자로서 위임을 받았는지 명확하게 해명하라고 요구했지만 마포구청 공무원은 '해명할 책임이 없다'는 식의 답을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나오는 마포구청과 공유지를 지키려는 자치구 주민 사이를 중재하고자 했던 마포경찰서 경찰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업무시간에 노란 조끼를 입고 나온 공무원들은 엉뚱하게 헛걸음을 한 셈이 되었고, 급한 마음에 한달음 달려온 경의선 공유지의 친구들은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행정은 '사후에', 공무원이 자기 일에 대한 책임만 지려는 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사이 회복할 수 없는 훼손이 진행되었고 결국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전가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서의 갈등은 어느 것도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17년 아현포차의 철거과정에서 서울시 주민감사를 통해 마포구청의 위법적인 행태가 적발되었지만 이에 대한 징계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없던 예산을 무단으로 전용하고 구청장이 휴가를 간 상태에서 결재 권한이 없는 부구청장이 진행한 사업이었음에도 누구도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2.

경의선 공유지는 원래 경의선 철도가 다니는 길이었고 이것이 지하화되면서 지상부에서 경의선숲길과 역세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시가 막대한 돈을 들여서 조성한 경의선숲길은 '연트럴파크'라고 불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익숙한 사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철도시설공단이 진행한 역세권 개발은 홍대 근처의 애경 사옥과 공덕역 인근의 효성 사옥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서울시와 철도시설공단의 협약을 통해서 추진되었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철도용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는 자리는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경의선숲길은 주변의 땅값을 2000년대 초반보다 2배에서 3배까지 올려놓았습니다. 기존에 철도길에서 살던 도시의 빈민들은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와 새롭게 들어온 상가에 의해 내몰렸습니다. 오랜 기간 철도길 옆에 살던 사람들이 철도길이 사라지자 오히려 살던 곳에서 내몰리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역 주변에는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영리사업을 위해 적게는 30년, 많게는 50년 이상 국유지 상태였던 철도용지를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의선 공유지의 점거는 시민들의 땅인 철도용지가 이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2016년부터 시작된 운동입니다. 그리고 그 해 아현동에서 쫓겨난 아현포차의 이모들이, 가든파이브에서 쫓겨난 청계천 상인이, 성동구 재개발 사업에서 쫓겨난 청년 세입자가, 강남의 가게에서 건물주에 의해 쫓겨난 상인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우리는 이때부터 경의선 공유지를 26번째 자치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울 시내의 25개 자치구에서 권리를 빼앗기고 결국 쫓겨난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인 경의선 공유지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자치구로서 26번째 자치구를 선언하고 이곳은 도시에서 몫이 없이 내몰린 이들의 공간임을 선언했습니다.


▲ 사진 김상철


이곳에 정착한 이들은 이 공간에서 영구적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의선 공유지에 일시적으로 이주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도시 난민'이라고 부르고 경의선 공유지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의 플랫폼으로써 활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이후에 이주한 마포희망시장 상인들은 마포구청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기존의 마포문화센터 앞에서 장터를 운영하던 분들이고 다양한 셀러들은 다른 도시의 공간에서는 1평 남짓의 공간을 찾을 수 없어 경의선 공유지의 공간을 일시적으로 빌려서 장사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안에서 이들이 마음 놓고 정착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고 부정의입니다. 이들은 누구처럼 100채가 넘는 집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변변한 상가도 가지지 못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삶을 유지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시의 공간은 그곳을 잘게 쪼갠 소유권에 의해 분할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나 서울시가 소유하고 있는 국공유지는 도시의 몫이 없는 이들이 소유권에 질식되지 않도록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공유지조차 대기업이 차지합니다. 어쩌면 최근 도시 커먼즈라는 낯선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재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의 결과로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3.

어원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공공성으로서 public이라는 개념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과 같이 누구나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public은 그 공간을 관리하는 공공기관과 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 간에 허가라는 절차가 존재합니다. 허가 절차가 없다고 하더라도 public은 관리와 이용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public을 이용하는 이들은 공공재에 대한 소비자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달리 commons는 어원상 '모두에게 속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속한다는 것은 관리와 이용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이 그만큼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commons가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경의선 공유지를 commons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경의선 공유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누군가 관리하는 사람이고, 누군가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능한 방식으로 공유지가 유지되도록 돕고 협력합니다.


▲ 사진 김상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현재 경의선 공유지로 활용되고 있는 부지와 그 맞은 편에 있는 옛 마포우체국 부지입니다. 한쪽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자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면서 관리하는 곳이고 다른 한쪽은 9년이 넘도록 펜스에 둘러싸인 채 방치되고 있는 곳입니다. public의 관점에서 보자면 옛 마포우체국 부지처럼 9년간 방치하더라도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commons의 관점에서 보자면 9년간 방치된 옛 마포우체국 부지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버려진 곳입니다.


경의선 공유지의 사용권을 배타적으로 획득한 곳은 이랜드라는 대기업입니다. 이랜드는 2014년에 철도시설공단의 역세권 개발사업에 참여했지만 지금까지 변변한 도시계획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공간을 대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부정되었습니다.


우리는 공유지가 민간기업의 사용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리하게 기업의 사업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특혜를 주는 것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이 공간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민들이 직접 사용하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경의선 공유지의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내몰린 이들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현재 학교를 벗어난 독립적인 연구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연구자의 집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도시공원이 아니라 도시광장으로서, 목적을 정하지 않은 다양한 시민들의 활동이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서 남겨지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한 평의 땅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더 낮은 곳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한 공동의 자산으로써 활용되길 원합니다.


4.

다시 바람이 차가운 겨울이 다가온 지난 12월 12일, 마포구청 공무원은 법원 집행관을 앞세워 다시 경의선 공유지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고시'라는, 명칭이 분명한 서류를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이 부동산의 현상을 변경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하여 채무자가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경의선 공유지의 시민들에 대해 제기한 부동산가처분 소송과 부동산인도 소송에 앞서서 제기한 부동산점유이전금지가처분의 결과 통지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언제나 불법이었던 경의선 공유지는 대한민국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 앞서서 '합법적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법원에 의해 현상을 변경하지 않는 조건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으니까요.


경의선 공유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은 지난 겨울맞이 척사대회를 통해서 현재 상황이 어떠하고 여기서의 쟁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유연하게 현재의 문제를 대하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경의선 공유지가 삶의 터전이었던 이들의 삶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을 우선해서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애초 우리는 도시의 공간이 시민들의 구체적인 필요에 의해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히 경의선 공유지의 마지막 역시 이런 원칙이 관철되길 바랐습니다.


▲ 사진 김상철


경의선 공유지와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가 땅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에 앞서 공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이 함께 나눠 사용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이런 제안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마포구청은 명도소송을 통해서 경의선 공유지에 있는 이들을 다시 내몰 것으로 보입니다. 철도시설공단은 자신들의 책임회피를 위해 이랜드 측이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도시 난민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하나의 소유권이 독점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필요가 교차하고 서로 간섭하는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공간이 commons로서 확장될 수 있는 다양한 도시 실험을 진행할 것입니다. 경의선 공유지는 언젠가 달성해야 할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함께해주신다면 더 많은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경의선 공유지의 출발과 과정에 함께해주신 분들이 경의선 공유지의 마지막도 함께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리적 광장을 넘어선 우리 사회의 마지막 전환을 위한 시도인 커먼즈의 실험에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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