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선과 함께한 1년

2020년 1월 6일 업데이트됨

- 윤경자 사장님, 영주님 인터뷰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서촌 궁중족발에서 첫 기도회를 했습니다. 강제집행으로 김 사장님 손가락이 다친 지 닷새 뒤였습니다. 그때부터 1년이 넘는 지금까지, 사장님들과 함께 궁중족발이 쫓겨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영주님은 기도회마다 직접 만드신 간식으로 연대하고 계십니다. 윤 사장님과 영주님 두 분을 만나 옥선과 함께한 1년이 어떠셨는지 들어 봤습니다.


- 저희가 함께 기도회를 꾸려나간 지 1년이 훌쩍 지났어요. 사장님, 첫 기도회 기억나세요?


= 윤: 그때 사실 경황이 없었어요. 제일 힘들 때였거든요. 애 아빠(김 사장님)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저 혼자 있었어요. 기도회를 한다고는 하는데 뭘 하는 건지 깊숙이 파악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기도회 때 사람이 되게 많이 오는 거예요. 처음에만 많이 온 게 아니고 꾸준하게 계속 많이 왔어요.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도움을 주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다는 게 제일 고마웠어요.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옆에 있어 주니까요. 나는 주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저 젊은 사람들이 시간을 여기에다 할애하고 자기 돈을 쓰면서 왜 이렇게 나를 도와주지? 나한테 받아가는 건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이건 뭐지? 이렇게까지 하는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 지나고 보니까 뭘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단지 힘들고 어려운 상태를 같이 버텨 줬어요. 그게 제일 고마웠죠.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왔을 때도 지치지 않고 계속 꾸준하게, 항상 자기 일처럼 같이 있어 주고, 마음 아파해 주고, 울어 주고, 함께 해 줬다는 것은 그 어떤 거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어요. 이제는 고마움을 넘어서 신뢰해요.


- 영주님은 옥선 예배 제일 처음 온 게 언제예요?


= 영: 옥선 분들이 합창하실 때였어요. 그날 제가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돼서 ‘지금 사장님 만나러 가야지. 뭐든 하고 있겠지’ 하고 갔는데 예배 중이었어요. 그 후로 예배에 계속 참석했어요. 황푸하님 설교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옥바라지선교센터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자본주의라는 감옥에 갇힌 시민들을 옥바라지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자 만들었다’고 하셨어요. 옥선분들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 궁중족발에 처음 오신 건 언제예요?


= 영: 몇 년 전이었어요. 그때 친구랑 같이 처음 갔어요. 그런데 족발이 정말 부드럽고 맛있는 거예요. 그 후에도 몇 번 들러서 족발을 포장해 갔어요. 어떤 날은 포장해 갈 테니 미리 준비해 달라고 전화했는데 사장님이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왜 전화를 안 받으시지. 문을 일찍 안 여셨나’ 하며 가 봤어요. 그때가 제 기억으로는 세 번째 방문이었어요. 그때 제가 체중이 많이 빠져 있었는데 사장님이 그걸 알아보시고선 “난 또 누군가 했네” 하면서 말을 거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왜 이렇게 갑자기 살이 빠졌어요. 안 좋은 일 있어요? 결국, 다 지나가요. 언젠가는 다 끝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시는 거예요. 감사했어요. 그러고 나서 쭉 못 갔다가, 언젠가 족발 포장해 가려고 갔는데 철문이 있는 거예요. 문을 열어 보려고 해도 안 열리고, 들어가려고 해도 잘 모르겠고 ‘이게 뭐지?’ 하다가 집으로 왔죠. 집에 와서 검색을 막 해 보니 기사들이 뜨더라고요. 사장님 손 다치신 얘기도 뜨고. 그때부터 연대하기 시작했어요.




- 그런데 영주님 불자이신데 예배 오는 거 괜찮으셨어요?


= 영: 재미있어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신선하죠. 성경이나 종교적 내용이 담긴 기록들은 사람들이 더 나은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개개인이 소외되지 않으면서 존엄성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걸 은유나 상징으로 풀어낸 것으로 생각해요. 모든 종교 문헌들이 그런 것 같아요. 다 존중하고 좋아해요. 재미있어하고요.


저에게는 사실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의미 없어요. 신이 있다 믿고 예수의 이름을 앞에 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가 의미 있어요. 한국 기독교에서는 늘 부정적인 의미들만 느꼈어요. 저런 사람들이 믿는 신이라면 없는 편이 낫고 그게 이 세상에 이롭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옥선이 말하는 신이라면 있는 편이 좋겠다.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인류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옥선이 신선했어요. 대한민국의 기독교 토양 안에서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지. 강제집행 위기에 처한 현장에서 기도회하고 십자가 세우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십자가 옆에 전태일 열사의 그림이 있길래 ‘이분들 기독교 안에서 되게 미움받겠다’라고 생각했어요.




- 작년 후원의 밤 때, 저희가 영주님께 ‘베스트잔칫상’ 드렸잖아요. 기도회마다 간식을 만들어서 가져오시는 게 너무 감사해서요. 간식은 어떤 계기로 챙겨 오시게 된 거예요?


= 영: 제가 맛있는 거 먹는 걸 좋아해요. 그냥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거예요. 길에서 기도회할 때, 윤 사장님이 먹을 것 못 챙겨 주는 걸 마음에 걸려 하셨어요. 자기 시간 들이고 차비 들여서 온 젊은 친구들을 그냥 보내는 게 아쉽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작년 여름에 길바닥에서 얼마나 더웠어요.


= 윤: 맞아, 진짜 잔인한 여름.


= 영: 그래서 윤 사장님 마음의 짐을 덜어 드리고 싶었어요. 미안함을 한 사람한테 몰아주면 그나마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잖아요. 여러 사람에게 미안해하면 힘드니까 저한테 몰아주시라고. 할 수 있는 게 그때는 그것밖에 없었어요.


- 지금도 간식 만들어 오시잖아요.


= 영: 기도회를 계속하니까요. 계속 모이니까요. 더 비싸고 좋은 거 해 드리고 싶은 마음 굴뚝이에요.


- 정말 더웠던 여름날, 영주님이 싸 오신 사과즙을 받았는데 기도회가 다 끝났는데도 안 녹은 거예요. 얼려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것도 같고, 정성도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 영: 너무 더웠잖아요. 죽을까 봐 걱정했어요. 다들 고생하는데.



- 우리 1년 동안 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폭염이 오나, 늘 같이 기도회 함께 했잖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거예요?


= 윤: 박득훈 목사님이 공정하지 못한 법에 관해 이야기하셨는데, 그게 가슴에 와서 쾅 박혔어요. 투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짐이 있었는데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그래, 맞아. 저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난 왜 움츠리고 있었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4·16 합창단분들 와 주신 것도 기억에 남아요. 사람들이 80명이 넘게 왔어요. 합창단분들 실제로 뵌 것도 처음이었고요. 저랑 나이가 비슷하시고, 잃은 아이들도 우리 작은애랑 동갑이에요. 애 아빠 그때 그랬잖아요. 나보다 더 큰 슬픔을 갖고 계신 분들이 오히려 여기 와서 나 같은 사람을 위로해 주니,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분들도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으셨는데 오히려 다른 현장에 연대하시면서 위로를 해 주시더라고요. 아픔이 다 치유되신 것도 아닐 텐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아파해 주시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나도 본받아야겠다 생각했고 힘을 얻었어요. 나처럼 힘든 사람들과 연대해야겠다고 생각 들게 하신 분들이 4·16 합창단분들이에요.


그것도 있다. 박김성록 씨(학술과교육위원회)가 자기 교회에서 어린이들이랑 기도문 썼다고 보여 준 적 있어요. 너무 귀여웠어요.



= 영: 저는 작년 6월 강제침탈 이후 바로 있었던 기도회요. 옥선의 성향과 기질은 투쟁 당사자에게 맞춰져 있어요. 투쟁 당사자가 깜깜한 터널을 통과할 때 옥선은 소리를 내줘요. 옆에서 누군가 소리 내는 게 투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옥선은 바로 그만할 사람들이에요. 자기네들 네임밸류 올라가는 것에 관심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 안에서 영향력 갖고 힘 가지려는 정치적 야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놀랍다는 거죠. 경이롭고. 그렇기 때문에 기도회 열지 말지에 대해 논의가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기도회는 변함없이 열렸어요. 그때 기도회를 해 줘서 고마웠어요. 그날 ‘현장의 증언’ 시간에 윤 사장님 발언이 굉장히 길었어요. 사실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하고 하소연하다 보면 마음 안에 쌓인 앙금을 토해낼 수 있잖아요. 사장님은 힘들었을 그때 하소연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날 기도회뿐만 아니라 1년 동안 계속 ‘현장의 증언’ 시간에 발언하셨으니까 안에 쌓인 것들을 계속 토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날 기도회 때 사람들이 되게 많이 오셨고 그래서 더 고마웠어요.


또 기억에 남는 건, 옥선분들 1박 2일 수련회 하셨고, 다음 날이 기도회였어요. 힘들었을 텐데 그 컨디션에 기도회를 하시더라고요. 안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었는데도 하셨어요. 다들 졸린 눈을 비비고 와서 자리를 채워 주더라고요. 적당히 뭉개도 됐을 텐데. 그 기도회도 인상적이었어요.



- 사장님은 ‘현장의 증언’ 시간에 발언하시는 거 어떠셨어요?


= 윤: 처음에는 괜찮았어요. 근데 갈수록 할 말이 좀 없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공기랑 쌔미(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활동가들)도 그렇다고 하구... 어떤 날은 (공기랑 쌔미가) 나 혼자 하래. 다 빠지고. 그만큼 늘 꾸준하게 기도회 때 발언해서 그래요.


= 영: 할 말이 없어졌다는 건 좋은 거예요. 마음속에 감정적인 앙금을 많이 덜어냈다는 거니까. 그만큼 기도회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어요.


= 윤: 그리고 영주님이 힘 많이 됐지. “돈 많이 들어서 어떡해요?” 했더니 돈 많이 안 든다고만 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 영: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요. 감당 못 할 것 같으면 안 하면 되지. 할 만하니까 하는 거예요. 할 수 있으니까.


- 1년 동안 옥선이랑 함께해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같이 걸어 나가요.

= 윤: 다른 데 연대 장소 가도 (옥선 구성원들이) 다 있던데. 다들 고맙죠. 옥선이 신생 단체잖아요. 연령대도 어리고요. 어느 정도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자기들 잣대로 봤을 땐 미흡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어설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투쟁 당사자인 내가 봤을 때 옥선은 나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는,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그 반대의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단체예요. 그런 분들이 염려하는 거, 염려로 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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