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선찬송가> 작업 후기
최종 수정일: 2020년 1월 7일
김영명 의선교회 청년부 목사

신학대학생 시절, 예전에 나온 민중 성가의 악보를 찾아 헤매던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 설교 후 부를 마땅한 찬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서 일과를 따라 예언서나 복음서로 설교를 하게 되면, 그에 어울리는 찬송이 정말 없다. 단적인 예로, 사회 참여적인 것은 고사하고, ‘용서’에 대한 본문으로 설교를 한 후 부를 찬양조차 찬송가에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 찬송가가 ‘개인주의적 영성’으로 충만하다면, 80년대 이후부터 나타난 ‘경배와 찬양’ 류의 곡은 찬양의 주제가 찬송가보다 더 줄어들어 버렸다. 하나님이 마치 찬양받지 못해서 안달 난 신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고, 그 찬양을 부르는 사람은 하나님 아래에서 매우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서울대 근처 헌책방 등을 다니면서 <민중복음성가>, <희년노래>,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 등의 노래책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노래 하나하나의 가사와 악보를 보면서 전율했다. 마치 신앙의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중 좀 괜찮은 것들을 교회에 갖고 가서 부르곤 했다(<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부를 때는 손을 들고 찬양하는 성도들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사라기보다는 너무 비장하고 무거운 ‘음악’에 있었다. 모든 노래가 김민기처럼 괜찮은 곡조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괜찮은 곡조를 가진 것들은, ‘어려웠다’.
2015년부터 3년 정도 세월호 분향소 현장에서 목요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때도 참 부를 찬양이 없었다. 찬송가에는 지친 이들을 위로할 만한 노래들은 좀 있었지만, 현장의 의기투합을 다질 수 있는 노래는 <뜻 없이 무릎 꿇는>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찬양’ 시간에 민가를 많이 불렀다. <그날이 오면> 등의 노래가 훨씬 그 현장에서는 ‘찬양’으로 다가왔다. 옥선찬송가 작업을 하면서, ‘이런 노래들이 진작 좀 더 나왔으면 세월호 현장에서도 훨씬 부를 노래가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종종 들곤 했다.
시작은 10월 말 즈음이었다. 황푸하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옥선찬송가>를 만들 건데,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황푸하의 음악 세계를 나름대로 존경하고 있던 터라 감사한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할 일은 악보를 만들고 녹음하는 일 정도라고 들었다. 악보를 만드는 건 자신이 있었지만, 건반을 치는 건 순전히 ‘교회용’이라서 좀 부끄러웠는데 어쩌다 보니 녹음까지 하게 되었다.

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황푸하 씨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미 몇 곡을 만들어 놓았었다. 그리고 <빈자리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 적 있나>, <두려워 마세요> 등, <옥선찬송가> 처음에 실려 있는 세 곡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너무 좋았다. 큰 은혜를 받았다. 문학적이면서도 사회적 영성이 그윽이 배어 있는 가사, 감미로우면서도 부르기 어렵지 않은 멜로디였다.
그러더니 황푸하 씨는 몇 곡을 더 만들어야겠다고 하였다. 나는 ‘‘좀 더 전투적인 곡’이 있으면 어떨까’ 하고 별 뜻 없이 제안했는데, 사흘 후에 몇 개의 곡이 나에게 더 도착했다. <허공>, <승리의 종> 등의 노래였다. 멜로디도 멜로디이지만 가사에 전율했다. 시편의 전투적인 가사나 <마리아의 노래> 등이 현장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20여 곡의 악보 작업을 하고, 4부로 된 짧은 곡들의 파트 편곡 등을 끝냈다. 녹음은 황푸하의 능력과 노력으로 정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예산이 더 있으면 더 좋은 녹음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자본과 싸우기 위해서도 자본이 필요한 세상이니, 그 정도의 아쉬움은 갈음하기로 한다.
황푸하 씨는 나에게 두세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이렇게 해서 100곡 정도 모아서 출판도 하고, 좀 많이 알려 봅시다.” 나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찬양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옥선찬송가>의 발간이 이런 ‘흩어져 있는’ 찬양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구심점이 되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공개적으로 이런 종류의 찬양을 ‘공모’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테다. ‘옥선’이 가시적인 성과나 소득(!)이 없다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옥선찬송가>의 2집, 3집 등을 계속해서 발간해 주기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