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 봤어? 하늘 봐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쁜 걸 함께 보고자 하는 마음이 귀여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두리번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지개는커녕 높이 솟은 거대한 빌딩들만 보이더라. 빌딩 사이에 숨겨진 무지개를 찾는 일이란 꽤나 어색한 일이었다. 내 시야가 하늘로 가득 찼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말이야!
2023 기독청년반빈곤연대활동 프로그램 중 [당신의 도시] 강의 시간에 ‘토포필리아’에 대해 배웠다. ‘토포필리아’는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토포’와 그리스어 ‘필로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우정을 의미하는 ’필리아‘의 합성어이다. 이는 특별한 장소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데, 저마다 토포필리아 장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나의 장소가 특별해지기까지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고향이 될 수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곳일 수도 있겠다.
빈활 일정을 함께 소화한 조원들과 각자의 토포필리아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찌나 다양한 추억들이 많던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얽혀 있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조원들이 소개한 장소는 모두 달랐지만 그곳을 갈 수 없음에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우리들이 추억하는 곳들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는 점점 우리에게 기댈 수 있는, 마음 붙일 수 있는 장소를 허락하지 않으려나 보다. 시민들의 추억과 정으로 가득 차 생기 넘치던 거리는 거대한 빌딩들의 거리로 점점 말라가는 중이다.
재개발을 강행하는 이들은 그 골목이 특색 있는 골목으로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지 과연 알까? 그곳에서 삶을 지켜내던 사람들을 대책 없이 쫓아내는 게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일인지 알고 있을까?
재개발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단지 모두를 위한 대책 있는 재개발을 하자는 것이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그곳에 자리하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 그 거리에서 하루를 있었든, 몇십 년을 있었든 상관없이 말이다. 재개발이 시작돼도 계속해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 거리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음에도 마치 그 댓가인냥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쥐여준 채 나가라고 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재개발을 마친 뒤 세워진 으리으리한 빌딩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곳에는 높이 솟은 빌딩만큼이나 높게 오른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가진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모두를 위한다는 재개발은 결국 약자들이 배제된 사회를 낳았다.
그런데도 지역 개발과 경제 성장 그리고 주거지 개선을 위한다며 진행되는 재개발은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모두가 함께 살라고 만드신 땅은 ‘더’ 가진 자들의 소유물로 변질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고층 빌딩으로 그곳에 자리하던 사람들의 삶을 지울 수 없다. 땅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땅을 소유하려는 자들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땅을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며 모두가 살기 좋은, 쫓겨남이 없는 세상이 속히 오길 기도한다.
심승미(감리교신학대학교 예수더하기)